칸다 닛쇼의 평생

画材の写真

북쪽의 대지에서 농민으로서 살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짧은 생명을 불태운 고고의 화가, 칸다 닛쇼. 그의 남은 작품은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습니다.
칸다 닛쇼는 1937(昭和 12)년, 도쿄의 네리마에서 태어났습니다. 일곱 살 때, 가족은 홋카이도 토카치에 정착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개척 생활 속에서 닛쇼는 농업에 종사하면서 점차 회화에 열정을 기울이게 됩니다. 친밀한 생활에 소재를 취해, 한 필 한 필에 영혼을 담아 그려진 강력한 그 작품은, 서서히 높은 평가를 받게 됩니다만,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던 1970년, 병 때문에 32 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합니다. 끝까지 계속 그린 말의 그림은, 반신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습니다.
―『칸다 닛쇼 대지에의 필촉』전도록에서(홋카이도 신문사, 2020년)

神田日勝と馬の写真

결국, 어떻게 작품이 태어나는지는, 어떻게 삶의 방식을 취하는지에 달려있다. 어떻게 사는지의 지침을 그려서 모색하고 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리는지의 끝이 없는 사고의 계속됨이 나의 생활의 골조인 것이다.
기계 문명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이 기성품적 생활을 강요받는 가운데, 크리에이티브한 우리의 일은 기성품적 인생에 대한 겸손한 반역일지도 모른다.
[25주년 기념 전도전 오비히로 순회전 1970년 7월]

神田日勝の写真

예술은 작가나 표현자에게 가장 중대한 것, 가장 절실한 것, 자신의 삶에 가장 강한 관계가 있는 것, 가장 잘 알게 된 것…을 주제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작품을 통해 강한 발언을 할 수 있을까요. 장미의 아름다움, 목걸이의 아름다움,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은 내 삶에 있어서 내 삶에 가장 중대하거나 가장 절실하지는 않습니다. 내 인생관을 뿌리까지(보통) 흔들만한 것은 아니다. [중략] 장미의 아름다움과 목걸이의 아름다움은 예술의 아름다움과는 완전히(보통) 이물질이다, 자연 현상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예술의 무게가 있는 날에는 이어지지 않는다. 거기에 인간의 깊은 사고가 참여하지 않으면…
[친구 타카하시 에츠코 앞의 서한에서 월일 미상(1969년 10월 하순)]

연보

1937년 12월 8일 토쿄 네리마에서 태어난다.
1945년 8월 7일 전쟁를 피해 일가로 홋카이도로 건너와, 토카치 지방의 시카오이촌에서 농업을 시작한다.
1952년

중학교 재학시에, 형의 카즈아끼(나중에 화가가 된다)의 영향으로 유화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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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중학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가업 농업에 접한다.
1956년 오비히로시의 히라하라사전에 《소마》 ‘A Lean Horse’를 첫 출품해 화가로 데뷔한다. 베니어판에 페인팅 나이프로 그리는 스타일이 확립된다.
1960년 삿포로에서 열리는 전홋카이도전에《집》「House」를 첫 출품, 첫 입선. 이듬해에는 홋카이도 지사상을 수상. 폐옥이나 폐기물, 노동자를 소재로 한 리얼리즘의 작풍에 도전한다.
1962년 타카노 미사코와 결혼. 그 후 1964년 장남 테츠야, 1968년 장녀 에리코를 낳는다.
1964년 도쿄에서 열리는 독립전에《한 사람》“Alone”이 첫 입선. 말이나 농민의 모습을 그린다.
1966년 전홋카이도전 회원이 되었다. 선명한 “화실” “Studio”시리즈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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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암포멜’의 영향을 받은 ‘사람과 소’ ‘Men with a Cow’ 시리즈를 시작한다. 집에 아틀리에를 만든다.
1969년 자작을 출품한 전람회를 보면서 도쿄에 향한다(평생 한 번만의 체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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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발열하면서 밭일이나 제작, 전람회 준비에 분주한다.
8월 25일 신우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체거. 향년 32세.
10월 독립전에 《실내 풍경》 ‘Interiors'(홋카이도립 근대미술관 소장)(Hokkaido Museum of Modern Art)가 유작 전시되어 처음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다. 이듬해, 도내에서 칸다 닛쇼 유작전이 개최.
☎︎ 0156-66-1555
10: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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